DESIGN | 2026년 10월 | 4 MIN READ
음악은 어떻게 해야 보일까
음악은 소리로 시작하지만, 기억되는 방식은 소리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음악이 다른 형태를 빌리며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WRITER jeongmin Lim
좋아하는 음악을 떠올리면 노래만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앨범의 디자인이나 무대 위 한 장면, 그들만의 로고 등 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음악은 디자인을 만나는 순간 귀로 듣는 콘텐츠에서 보고, 가지고, 경험하는 콘텐츠로 확장됩니다. 음악을 다른 모습으로 확장되는 사례를 따라가며, 우리가 음악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봅니다.
음악은 귀로 듣습니다. 그런데 오래 기억에 남는 음악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노래 소리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앨범을 처음 열었을 때,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던 무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던 로고가 노래와 함께 떠오르기도 합니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다른 모습으로 기억 속에 계속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음악 자체보다 음악이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앨범의 고정관념을 깨다.
뉴진스의 앨범 패키지는 CD나 포토카드보다 먼저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합니다. 2023년 겟업(Get Up)의 버니즈 백(Bunny Bag) 버전은 이름처럼 실제 가방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안에는 CD와 포토북, 가사지, 포토카드 등이 들어 있습니다. 앨범을 사면 보통 음악만 듣고 패키지는 선반에 전시합니다. 그런데 뉴진스의 앨범 패키지는 달랐습니다. 앨범을 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다른 물건처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뉴진스의 독특한 점은 앨범 안에 무엇을 더 넣었느냐보다 앨범 자체를 무엇으로 만들었느냐에 있습니다. 음악을 소장하는 경험을 일상적인 사용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앨범이 더 이상 음악을 담아두는 데 머물지 않고 음악의 이미지를 생활 속으로 가져오는 물건이 됩니다.

무대는 음악의 배경이어야 할까?
레드벨벳의 필마이리듬(Feel My Rhythm)무대를 보면 노래를 듣는 것뿐이 아니라 전시된 그림,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하여 음악 위에 고전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겹쳐 놓았습니다. 곡의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 영상, 의상 모두 old and classic이라는 음악적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이어갑니다. 여기서 무대는 노래 뒤에 세워 놓는 예쁜 배경과는 조금 다릅니다.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고전적이고 낯선 세계를 실제로 눈앞에서 만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마이리듬의 무대를 보면 음악을 시각적으로 설명한다는 말보다, 노래 안에 있던 세계에 잠시 들어간다는 느낌에 더 가깝습니다. 무대가 음악의 배경에서 음악의 일부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홍보가 음악을 보게 만들 때
앨범을 대중에게 알리려면 보통 방송이나 옥외 광고를 통해 홍보합니다. 그런데 에스파(aespa)의 레몬에이드(LEMONADE) 팝업을 보면 홍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해집니다. 에스파는 2026년 레몬에이드 활동과 함께 서울 여의도 IFC몰에서 팝업을 선보였습니다. 팝업 공간에는 앨범의 이미지와 그래픽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구성되어 앨범을 설명하는 대신 하나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방문객은 앨범을 듣기 전 먼저 그 음악이 가진 색과 이미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공간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순간 팝업은 단순한 홍보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방문객이 남긴 사진과 영상은 다시 온라인에서 앨범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됩니다. 음악을 듣기 전부터 이미 음악을 보고 있는 경험이 됩니다. 결국 홍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음악을 직접 듣기 전에 앨범의 세계를 먼저 경험하게 하고, 그 경험이 다시 사람을 통해 확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름보다 먼저 기억되는 것
엑소(EXO)의 로고는 처음 봐도 단순합니다. 육각형을 기본으로 E, X, O를 표현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이 단순한 모양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합니다. 엑소의 정체성을 나타내면서도 원인 하트처럼 다른 형태로 변형할 수 있고, 활동 콘셉트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If Design 역시 이 로고의 핵심을 단순하지만 다양한 콘셉트에 적용할 수 있는 유연성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로고는 이름을 대신해 줍니다. 앨범 표지에 작은 로고로 들어가도 무대나 상품에 크게 나타나도 같은 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콘셉트가 달라져도 그 로고는 계속 남습니다. 그래서 로고는 단순히 그룹명을 예쁘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여러 모습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주는 시각적인 기억이 됩니다.

앨범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디자인하는 법
키키(KiiiKiii)의 WhyKiiiKiii Tour를 찾아 들어갔는데, 앨범보다 먼저 여행 사이트가 하나 나타납니다. 이름과 출발지를 입력하고 티켓을 고르게 하며, 키키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사이트는 2026년 8월 발매된 미니 3집 앨범을 알리기 위한 컴백 프로모션으로 공개됐습니다. 여행이 단순한 설정으로 끝나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여섯 개의 투어로 나누고 앨범 수록곡을 각각의 여행처럼 배치했습니다. 방문자는 시간대와 투어를 고르고 지도와 가이드, 후기 등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앨범의 곡들을 만나게 됩니다. 즉,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대신 음악이 궁금해지는 상황을 먼저 만든 것입니다. 사이트를 둘러보며 힌트를 찾고 나면 자연스레 곡이 궁금해지고 다음 티저를 기다리게 됩니다. 앨범을 듣기 전부터 이미 컴백을 따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홈페이지는 정보를 보여주는 페이지보다 앨범을 기다리는 시간을 하나의 콘텐츠로 바꾼 프로모션 장치에 가깝습니다. 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대신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드는 과정부터 설계한 것입니다.
음악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소리에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닙니다. 음악이 가진 정체성과 세계관을 발견하고, 그것에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입니다. 익숙한 형식을 따라가기보다 이 음악으로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지, 무엇을 기억에 남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음악의 모습은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음악은 소리로 시작하지만, 그 끝이 소리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음악의 다음 모습까지 디자인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