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E | 2026년 9월 | 4 MIN READ
일상을 찍는다는 것: 마틴 파
AI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 마틴 파의 사진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앞에 세운다.
WRITER Seoyeon
21세기, 이미지의 대범람 시기에 다큐멘터리 사진은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까. 마틴 파는 우리 일상에 사진이란 어떤 역할을 해주는지, 이에 따라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무엇이고, AI 이미지들 사이에서 그 빛을 어떻게 발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국제적인 사진 단체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회원 중 한 명으로, 1980년대 이후 일상과 소비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2026년 7월 16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서울시립 사진 미술관에서 개최되는《마틴 파 : We Are Martin Parr》전시는 2025년 작고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오늘날 AI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그의 사진은 여전히 일상을 앞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할 만한 전시이다.
마틴 파(Martin Parr)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현대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자본주의·소비문화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유의 선명한 색감이 그를 대표하는 것으로 자리잡았지만, 실은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맨체스터 공과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경력을 쌓던 초기 10년 동안은 흑백 사진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흑백 사진이 지니고 있던 예술적 맥락이 도드라졌기 때문인데, 그는 색을 쓰든 쓰지 않든 자신의 사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답을 그는 영국에서 사라져가는 일상의 삶들을 기록하는 데서 찾았다. 도시 노동자 계층이나 농촌 공동체처럼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대상들에게서 그는 사진이 지닌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평범한 삶을 붙잡아 두는 것, 이것이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찾아낸 자리였다. 그리고 이는 사진이 사실이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데에서 가치와 예술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사진이 다큐멘터리로서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 밝혀 주며, 마지막까지 일상의 평범함을 담으려 노력했다.
당시 예술 사진에 색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미국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받아 1983년부터 1985년 여름 동안 뉴 브라이튼(New Brighton) 해변에서 본격적으로 컬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작업을 엮은 사진집이 《마지막 휴양지: 뉴 브라이튼 사진집》(The Last Resort: Photographs of New Brighton)이다. 1980년대 뉴 브라이튼은 노동자 계층에게 인기가 있던 해변 휴양지였는데, 당시 영국에는 계층 양극화를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받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한창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양극화의 양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기였기 때문에, 사진집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작가의 시선이 너무 가감 없어 오히려 노동자들을 관음증적이고 잔인하게 바라본다고 비평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사진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픽션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촬영하고, 살짝 비틀면서 이를 시도해 왔다.”는 그의 말처럼 일상을 투명하게 담아내고자 하는 뚜렷한 신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 속 일상은 단순히 널려 있는 스냅샷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해준다. 바로 그 꾸밈없음 때문에, 그의 사진은 때로 뾰족한 유리처럼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다.
우리는 한 장의 사진을 보더라도 다양한 내용을 함께 읽어낼 수 있다. 배경에 놓인 회색 벽돌들의 쓸쓸함,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엿보이는 미래의 침울함과 같이 말이다. 혹은 같은 대상이더라도 선전용으로 쓰인다면, 이 벽돌들은 우리가 개선해야 할 사회로, 아이들의 뒷모습은 역경을 딛고 나아가는 사람들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을 망라하는 사진의 가장 강력한 힘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그리고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는 믿음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어느 정도 렌즈의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상이 렌즈 앞에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보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디지털 조작과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며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마틴 파를 포함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일컬어지는 사진 분류들은 실존 사건이나 대상을 허구 없이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에 있다. 21세기는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합성 이미지,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바라보는 이미지는 실제 대상을 찍은 사진일 수도, 여러 자료를 짜깁기한 것일 수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을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는 이미지라는 범주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진이 원래 지니고 있던 대상의 ‘증명’이라는 특성을 약화시킨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겠다는 마틴 파의 태도는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지금 사진에게 남은 몫은 대상을 꾸미지 않고, 진중하게 지켜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마틴 파가 반세기 가까이 지켜온 이 태도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단 하나의 다짐, 사라져가는 평범한 삶을 있는 그대로 찍겠다는 다짐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평가와 더불어, 그의 출발점이 평범함과 일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카메라가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대상의 증명이라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일념의 다큐멘터리야말로 사진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흑백에서 컬러로, 자본주의와 소비문화가 반세기에 걸쳐 심화되는 과정을 함께 지나온 마틴 파의 행보는 그래서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말이 설 자리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있다. 실은 이 질문 자체가 다큐멘터리 사진사의 발전과 함께 첨예하게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더더욱 지금에 이르러 다시금 다큐멘터리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해 주는 매체인가 생각해야 할 때이다. 카메라가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대상의 증명이라면, 인공지능 이미지들 사이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일념의 다큐멘터리야말로 사진이 나아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이번 전시를 기회로 관객들도 마틴 파의 사진을 즐기면서 동시에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